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만큼 어떠한 상황이나 일 등을 스스로의 의지와 계획대로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드문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옛말. 애초에 콩 심고 싶은데 팥 심어야 하고, 팥 심고 싶은데 콩 심어야만 하는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의사 결정의, 행동의, 실행의 완전한 주체로서 느끼는 희열과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그 '통제 가능한 상황' 때문에 어떤 이는 편한 패키지 여행 놔두고 굳이 힘든 자유 여행을 가고, 어떤 이는 돈 몇 푼이면 쉽게 살 수 있는 옷, 소품, 가구 등을 스스로 만든다. 조금 더 돌아 가더라도, 좀 더 어렵더라도, 내 뜻대로 부딪히고, 경험하고, 행하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자기 결정권, 통제권에 대한 욕구가 다른 것은 아니다. 요즘 10대, 20대의 젊은 층들은 학업, 취업, 사회생활 스트레스를 이른바 '탕진잼'으로 푼다. 1판에 500원, 1,000원하는 인형뽑기 앞에서 많게는 몇만원까지 투자하여 사실상 자신에게 필요 없는 인형을 뽑는다거나, 다이소에 가서 1,000원, 2,000원 짜리 저렴한 생필품들을 장바구니 한가득 쓸어 모으는 소소한 탕진을 하는 것인데, 통제 가능한 상황을 만든다는 것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아주 소박한 것일지라도 통제 가능한 상황 안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만족은 크다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 타인이 보면 별 쓸 데 없고, 효율성 낮고, 이해 불가능한 일들이 본인에게는 그 어떠한 것보다 값진 일일 수 있다.


물론 본인이 하고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지극히 사사로운 프로젝트라든가 도박, 중독 등 극단적인 경우 등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꼭 필요한 상황이 있다. 하지만 타인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온전히 자기 계발을 위한, 자기 만족을 위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일이라면 통제받을 이유가 없다.


지난번 알쓸신잡에서도 통제 가능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정재승 교수가 '다른 곳보다 카페에서 일이 더 잘되는 이유'에 대해 '커피하우스 이펙트' 이론을 통해 설명해준 것인데, 공간을 본인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 몰입을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꽤 일리 있는 주장 같았다. 실제로 카페에는 '왜 취업 안하냐'고 잔소리하거나 걱정하시는 부모님도 없고, 나보다 잘 나가서 부러운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도서관이나 독서실처럼 조용히 하라고 포스트잇 붙이거나 면박주는 사람도 없다. (너무 장시간 앉아 있어서 카페 주인 속 끓이는 경우는 논외로 하자.)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공부도 하다가 화장실도 갔다가 커피도 마셨다가 친구를 만나 대화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의욕(motivation)을 잃거나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뻔히 눈에 보이는 벽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 '보이지 않았던 벽'들에 부딪힌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픈 일이다. 이런 충돌이 쌓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 자신의 능력을 어떤 정도까지만으로 제약하거나,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도 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는 것이다. 우울하다.


어떻게 보면, 통제 가능한 상황을 경험하는 일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마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이 취업 난에, 저소득 고물가 시대에, 굳이 별 쓸데도 없어 보이는 혼자만의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시길 바란다. 자신을 둘러싼 제약이 많은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통제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자기 안의 에너지와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일 지 모르니까. 사실 혼자서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를 마주하든 간에 오롯이 혼자 끝까지 부딪혀볼 수 있는 권리, 필요 이상의 통제를 받지 않을 권리니까.

지난 토요일, 동네에 장이 섰다.

출출해서 뭐라도 사 먹으려는 찰나에 도넛 가게에서 만득이 핫도그 발견!

어릴 적 실내화 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하교 길에 종종 사 먹었던 간식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쫑그리에게 "먹을래?"하고 물어봤는데, 괜찮다 한다.

그에 잠시 시무룩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3초간 여자 언어 해석기를 돌린 쫑그리가 하는 말 "우리 삥그리 먹고 싶구나~ 사먹자! 꼬고!" 유혹 성공 헤헤 ;P


생긴 게 못났다하여 붙여진 이름, 만득이.. 작은 감자 조각을 다닥다닥 붙여서 튀긴 게 특징이다.

덕분에 감자 튀김과 핫도그를 한꺼번에 먹는 일거양득의 효과.

가격은 합리적인 ₩1,500. 케챱에 설탕까지 골고루 묻혀야 맛있지만, 과한 당 섭취는 참는 것으로...


요새 즉석에서 바로 튀겨주는 핫도그 가게가 인기 절정인데다 맛도 가격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투박하고 못난 핫도그가 그리울 때가 있다.

추억을 먹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무려 거제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추천해준 이태리식당 빛나.

단번에 이곳의 맛과 분위기에 반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영업 중인 곳이다. 애정 뿜뿜♥

 거울에 코팅된 글씨가 너무 예뻐 찍어보았다. 반짝반짝. 밤에 가면 모든 것이 블링블링!

 깔끔한 커트러리

▲ 조화마저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움


육식 매니아 쫑그리를 위해 스테이크를 요청했으나 늦은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솔드아웃ㅠㅠ 아쉬운대로 파스타와 감바스를 하나씩 주문하기로 한다.


트러플 크림 파스타 (₩16,000)

1인분 치고는 양이 꽤 넉넉했고 묽은 소스는 수프처럼 떠먹기 적당하고 고소해서 화덕빵과 함께 남김없이 다~ 먹었다.

무엇보다도 알덴테 상태의 꼬들꼬들한 면 식감이 맘에 들고, 시큼한 트러플 향과 고르곤졸라의 곰팡진 맛(?)이 전체적으로 감돌지만 과하지 않았다.


트러플 요리를 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재료 가격이 매우 비싸 극소량이 들어갔을 테지만 존재감은 참 확실했다. 아래는 트러플에 대한 나무위키 내용.

맛은 강렬한 버섯과 약간의 식초와 고기와 살짝 흙이 섞인 맛이다. 한약이랑 비슷한 맛도 난다 이것 말고는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혹은  을 한움큼 입에 넣어 씹은 상태에서 라이터 가스 냄새를 동시에 맡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맛없다는거냐 무엇보다 강렬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진미가 그렇듯이 매우 이질적이고 짙은 향을 풍긴다.

감바스 (₩15,000)

배신없는 새우의 찰진 맛. 화덕빵은 고소+담백. 올리브유를 많이 썼기에 다소 느끼하지만 고추 씨의 칼칼함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레스토랑 안에서 바라보는 밤 풍경도 괜찮았지만 밖에서 바라본 레스토랑 모습이 훨씬 예뻤다. 레스토랑 바로 앞에는 아주 작은 산책로와 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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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어느 여유로운 낮, 빛나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놓치지 않고 맛볼 수 있었던 호주산 부채살 스테이크 (₩24,900)

그릴에 조리한 것을 뜨거운 판 위에 올려서 내준다. 흔하디 흔한 느타리 버섯도 스테이크 옆에 서니 그럴싸하다.

나의 사랑 아스파라거스가 딱 한 줄기여아쉬웠지만 이곳 가격대가 만족도 대비 저렴한 편이기에 괜찮았다. 새콤한 토마토와 달달한 양파 구이 가니쉬도 나름 어울리는 조화.

스테이크는 잡내나 잡미가 없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두툼하고 육덕진 부채살의 부드러운 식감과 맛이 훌륭했다.

미듐 레어 상태로 겉면만 익혀 나와 달궈진 판에 더 익혀 먹어도 되지만, 우린 썰기가 무섭게 바로 바로 흡입! :) 스테이크는 역시 미듐 레어가 진리~

루꼴라 화덕피자 (₩17,000)

개인적으로 루꼴라 자체의 단맛을 좋아하는데 으ㅠㅠ 취향 저격!
모짜렐라와 그라나빠다노 치즈의 감칠맛과 잔잔한 페스토 소스, 토마토의 신선함이 어우러져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맛이었다.

화덕빵에 신선한 샐러드를 얹어 먹는 기분.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아 기회만 되면 가고싶은 곳.
아직 생긴지 얼마 안된 탓일까, 조용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탓일까 그리 북적이진 않았는데. 아무튼 오래 오래 흥하기를 :)



지난 2015년 봄, 쫑그리와 함께 했던 두달간의 동남아 배낭 여행기.

그때의 그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머릿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가므로 앞으로라도 종종 생각나는 만큼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달아나는 추억을 붙잡아야지.

게으름 충만한 스스로를 향한 선전포고!

쫑그리가 노잼의 도시 대전에 왔다.

누군가가 대전에 방문하게 되면 늘 그렇듯이 활동보다는 먹방에 초점을 맞춰 가이드하게 된다. ^^;

대청댐, 장태산 휴양림, 계족산, 동학사, 수통골 등 방문할만한 곳이 있기야 하지만 나같은 뚜벅이들에게는 약간 한계가 있으므로... (지리산 산골도 남해도 차 없이 잘만 다녔으면서!=_=) 이번에도 역시 먹고 카페 가고 먹고 영화 보고 먹고 산책하는 정도의 루트로! :)


날도 더운데다가 고기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반영해 월산본가에서 냉면과 고기를 먹을까 하다가 콜롬버스의 신대륙처럼 발견한 왕관식당!

두어번 진주에 가서 먹었던 육회 비빔밥이 무척 그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2시간밖에 안되는 짧은 영업시간, 그 희소성에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큰길과 가깝긴 하지만 골목 안쪽에 위치한 왕관식당. 생활의 달인 비빔밥 편에 출연된 곳이라고 한다.

콩나물밥(₩4,000) 2인분과 육회 대자 한접시(₩9,000)를 시켰다.


흰쌀밥과 콩나물이 전부라 투박하면서도 넉넉한 양이 혜자스러운 콩나물밥과

나도 그랬고 옆테이블 아주머니도 그랬고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다 한번씩 물어서 확인할 정도로 '대(大)'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미니 육회 한접시 :)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수긍하게 된다.

육회를 둘이 사이좋게 나눠 넣고 특제 양념장에 스윽스윽 비벼서

한입 앙!
꿀 맛 :)


개인적으론 육회를 비롯해 여러가지 나물들을 잘막잘막하게 썰어 입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는 듯한 식감을 주는 진주 육회비빔밥이 좀 더 맛있었지만, 콩나물 특유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더불어 육회를 즐기는 왕관식당의 음식도 별미 중의 별미였다.


원래 콩나물밥 하면 기껏해야 잘게 간 돼지고기를 볶아서 곁들이는 것밖에 몰랐는데 육회라니 ㅠㅠ

이제 집에서 콩나물밥을 해먹을 때마다 '여기에 육회가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할 것 같다.

* 영업시간 | 12:00 - 14:00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메시지를 보내 최근에 시작한 신서유기 시즌 4를 강력 추천했다. 야근이 잦고 고된 회사생활 가운데 유일한 낙이라며.

늘어지는 금요일의 밤, 때마침 TV에서 재방송을 틀어 주길래 첫 회를 봤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신서유기의 배경지는 베트남이었다. 동생과 나는 몇해 전 베트남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며 여러 추억을 공유한 사이였다.

▲ 베트남의 청명한 하늘. 알쓸신잡에 나온 김영하 작가의 표현처럼 햇빛이 참 바삭바삭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너무 습한)


베트남어로 상호명이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 좁고 높은 건물들, 왁자지껄한 공기, 쨍한 날씨. 요즘따라 더 그리운 베트남 풍경..

그중에서도 단연 '분짜(Bun cha)'가 눈에 띄었다. 얇은 쌀국수 면인 분(Bun)과 고기를 다지고 치대서 구운 미트볼 형식의 짜(cha)를 합쳐 분짜라고 하는데, 돼지고기 짜(Cha thit lon)와 함께 삼겹살을 내주거나 신서유기에 나온 곳처럼 고기를 양념해서 그냥 구워내는 식으로도 나온다.

▲ 분짜 사진이 외장하드 구석 어딘가에 짱박혀 도무지 보이지 않기에 대신 가져온 분팃느엉(Bun thit nuong; 구운 고기 쌀국수) 사진. 쿠킹클래스에서 직접 만들고 세팅한 것이다. 분짜도 각자 그릇에 면과 고기와 야채를 대충 이런 느낌으로 담아서 느억맘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사실 나에게 분짜는 애정이 담뿍 담긴 정성 그 자체다. 내가 베트남에서 처음 사귄 친구에게 대접받은 음식도,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제자들에게 대접받은 음식도 모두 분짜였다.

분짜는 그만큼 대중적이면서도 귀한 손님들에게 내놓기에 손색 없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참 간단해보이지만 메인인 짜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짜'는 직화로 굽기 때문에 베트남의 덥고 습한 날씨를 감안하면 정말이지 집에서 만들기 싫은 음식, 주부들이 만들기 꺼려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 지글지글한 뙤약볕에 장우산을 양산처럼 대동하고 돼지고기 짜(Cha thit lon)를 굽느라 바쁜 베트남 학생. 참 고생이 많다ㅠㅠ

 

장시간 작은 화로 앞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알맞게 굽고, 뒤집고, 부채질을 하는 동안 풍겨 오는 숯불 구이의 냄새는 좀 많이 환상적이다. 초대받은 손님이 일찌감치 맛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고, 맛을 보고 나면 집주인에게 감사하게 되는, 삼삼오오 다같이 둘러 앉아 분과 짜와 향신채를 나눠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게 되는 그런 음식이다.

또한 보통 삼겹살 부위를 사용하기에 삼겹살이라면 꿈뻑 죽는 한국인들은 물론, 피쉬 소스가 들어가긴 하지만 과하지 않고 새콤 달콤한 소스 덕에 외국인들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완성된 분짜 상차림.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색채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화려한 꾸밈 방식새우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비싼 새우를 두 대접이나 구워줬다. 아래 오징어 김치전은 뭐라도 해야할 것 같던 나의 작품인데, 다른 접시들과 드레스 코드를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


안그래도 최근에 내맘대로식 분짜를 해먹었다.
여전히 베트남에서 일하는 한국 친구에게 부탁해 공수받은 느억맘(Nuoc mam; 피쉬 소스)으로 예전 쿠킹 클래스에서 배웠던 레시피를 떠올려가며 소스를 만들고, 삼겹살을 팬에 굽고, 분 면을 삶아 곁들여 먹었다. 채소는 아쉬운대로 상추, 파, 부추 정도.

약식 분짜도 맛이 꽤 괜찮았지만 현지의 느낌을 따라가긴 힘들었다.
더위를 이겨 가며 열심히 구운 고기의 맛과 향, 그 냄새와 함께 떠올려지는 현지 친구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들.. 애초에 그 최고의 요리 비결을 능가할 리 만무했지만.

 

유후인 도착 후 바로 역 앞 보관소에 짐을 맡겼다.

덜어낸 짐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유후인 구석구석을 거닐기 시작했는데, 비가 내려 우산을 써야하긴 했어도 장대비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산과 강, 논밭. 그 어디를 둘러 봐도 자연, 자연, 자연. 말 그대로 자연과 공존하는 작고 조용한 마을.

아기자기한 집들도 꽃과 나무와 함께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조용한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졸졸졸, 느리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작은 강과 저 멀리 울타리처럼 녹푸르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수, 시골 특유의 맑은 공기, 청량한 새소리 덕에

유후인 노 모리를 탔을 때의 그 상쾌한 기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날도 좋고, 그림도 좋고, 함께 하는 이도 좋고.

둘이서 도란도란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긴린코 호수까지 걷는 길.

 

 

드넓게 펼쳐진 논과 밭 뒤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온천지와 료칸의 풍경도 아늑함을 더해주어서, 우리네 시골과 비슷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재밌게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연상되었다. 그곳은 천상계 료칸이라 좀 더 럭셔리하긴 하지만 ;)

 

 

긴린코 호수에 다다를 무렵, 다른 동선으로 온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곳이 유후인에서 거의 전무후무 하다시피한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지만,

이런 저런 한데 엉킨 사람들의 말소리가 종전의 고요와 평온을 깨버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함께 비도 소란스러워졌다. 후두둑 후두둑. 서둘러 사진을 찍고, 시내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번 여행에는 인적이 드문 새벽녘에 물안개 낀 긴린코의 모습을 보러 와야겠다. 그렇게 예쁘다는데.

 

 

가는 길에 지역 사람들이 즐겨먹는다는 토리텐 전문점을 들러 본격 먹방을 시작했다.

4-5평 남짓한 아주 작은 가게. 비가 와서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게 안에 딱 두세사람이 앉을 만한 의자가 있어 그곳에서 먹고 가기로 했다.

 

 

 

닭 안심인지, 가슴살인지 하여간 살코기인데도 불구하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하게 조리된 닭튀김, 토리텐을 유즈 코쇼우(ゆずこしょう, 유자 후추)에 찍어 먹었다.

평상시 닭 가슴살을 즐겨 먹기 때문에 안 해 본 조리법이 없는데 이집의 뛰어난 요리 비결을 배워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토리텐은 간이 세지 않고 튀김 옷이 얇아 담백한게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도 죄책감을 덜 수 있을 만한 음식 같았고, 유자 후추는 특유의 짭조름한 고추 맛에 상큼한 유자 향이 어우러져 음식 맛에 개성을 더해주었다.

내 입맛에는 무척 짠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찍어 먹은 걸 보면 중독성이 강한 게 확실했다.


첫 후쿠오카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유후인 여정.

비록 값비싼 료칸 대신 저렴한 유스 호스텔을 예약했지만 도심보다는 시골, 마천루보다는 너르고 푸른 자연 경관을 좋아하기에 들뜬 마음은 여전했다.



다만, 유후인으로 향하는 수단으로 테마 열차인 유후인 노모리를 택했다.

인당 4,550엔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유후인의 풍경을 확 트인 유리창 너머 조금이라도 더 빨리 눈에 담고자하는 탓이었다.



제대로 기차 여행하는 기분을 내고자 하카타역 에키벤에서 도시락도 하나 샀다.

판매 순위 No.2라는 1000엔 남짓한 규슈 도시락을 골랐는데, 정갈하니 색감도 예쁘고 생선 구이, 조림, 튀김 등 반찬 가짓수도 많아 이것저것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밥이 제일 맛있었는데, 일본 쌀은 왜이리 달고 윤기 넘치는지... 여행 시작과 함께 나의 저탄수 고단백 위주의 식사 원칙이 와장창 무너져버렸다... OTL



정 가운데 딱 하나 들어있던 발갛고 먹음직스러운 새우는 머리를 깔끔히 발라내고 먹으려는 찰나에 바닥으로 추락사(...)하고 말았는데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일본인 아주머니가 그 광경을 딱! 보고 웃으셔서 조금 멋쩍었다. ^^;



유후인 노 모리의 두 번째 묘미는 기념 사진 촬영이었다.

승무원에게 날짜가 적힌 팻말을 건네받고, 사진기를 건네주면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데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을 기가 막히게 찍어준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도 사진의 분위기를 한껏 밝혀줘서 매우 만족 :) 그의 실력 탓인지 우리 열차칸만 해도 거의 모든 승객이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후식을 위해 찾은 스낵 바.

유후인 사이다와 원두커피를 주문했고 특별할 건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엄청나게 흔들거리는 열차(무궁화 호보다 더 심한...)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과

스낵 바 한켠에 비치된 기념 엽서에 도장을 쾅쾅 찍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는 점에서 나름 흥미로운 방문이었다.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펼쳐졌던 파릇파릇한 풍경

나무들이 뾰족하면서도 둥그스름한 붓펜 촉처럼 생겨서 너무 예쁘고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던 건 단연 운전석 쪽 큰 창 너머 풍경이었다.

좁은 철로를 따라 수풀을 열심히 헤쳐가며 달리는 열차가 그려내는 풍경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서 식후임에도 불구하고 졸리거나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했다.


🔺 유후인 노 모리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 👀



중간에 승객들이 웅성웅성대며 오른 쪽을 바라보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뜻밖에 폭포가 있었다.

이제서야 찾아보니 지온(慈恩)폭포라는데 사진상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박력이 넘쳤다.

밤에는 조명을 켠다는데 그 모습이 살짝 궁금하다.


이외에도 폐교 같은 곳을 지나칠 때 일본어로 알아듣지 못할 안내 방송이 나왔는데,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도 귀신을 볼 것처럼 뭔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풍기는 장소였다. 무..무셩ㅠㅠ



약 2시간 후 초록의 아기자기한 유후인 노 모리는 목조 건물에 노란 등불이 어우러져 운치있는 유후인 역사에 도착했다.


유후인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설레게 했던 유후인 노 모리 ;)

초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가까이서 자연을 느끼며 도시 살이에 피곤했던 눈을 쉬게 할 수 있었기에 비싸지만 가치있는 선택이었다.



다이어트의 시작과 함께 냉동고에 엄청나게 많이 쟁여뒀던 닭가슴살!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볶아도 먹고, 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두둥탁! (으으;)

고독한 다이어터 홀로 먹으니 도무지 동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ㅠㅠ

온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치킨 커틀렛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라고 쓰고 그냥 나도 좀 맛있는 거 먹고 싶었다고 읽는다.)


커틀렛의 생명은 춱춱 속살!

튀기자니, 닭가슴살이 자신의 신분을 너무 망각하는 거 같아서..

잠시 ㄴㅏ으ㅣ, 아 아니.... 닭가슴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븐에 굽기로 결정한다 [!]



  Ingredients  

 ♩ 필수 재료 : 닭가슴살 500g  |  소금 · 후추 조금  |  밀가루 조금  |  계란 1개  |  빵가루  100~150g  |  식용유 충분히

 ♩ 선택 재료 : 우유 1컵  |  파슬리 가루 조금

  Recipe  

 ♩ 실제로는 닭가슴살 1.5kg 분량(약 8인분) 을 한꺼번에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대가족이라~ 행복해요~ ㅜ.ㅠ



1. 잘 손질된 닭가슴살을 반으로 여미고, 끝을 이용해 살살살- 두드려준다.

* 맨질맨질한 살이 위로 오게 해서 두드릴 때 살결이 찢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2. 자장~~ 자장~ 우유에 30분 이상 재워준다 zZz (※ 잡냄새 제거 및 연육 효과!)

3. 닭가슴살을 흔들어 깨운 후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하고,

소량의 소금, 후추, 파슬리 혹은 허브 가루를 뿌려 밑간을 해둔다. (10분 이상)



4. 요즘 부쩍 애정하는 밥 아저씨의 빨간 방앗간 통밀가루♥

고기 양면에 밀가루를 척척 입혀준다. 최대한 얇고 고르게 묻힌다.

※ 수분 흡수 및 점착 효과! (밀가루가 스며들도록 몇분간 그냥 두어도 좋다.)




5. 계란도 고이 잘 풀어준다. 소금, 후추 간은 계란 3개 기준으로 0.4 티스푼이면 족하다. 고염식 노노우!


6. 밀가루를 묻혀둔 닭가슴살에 계란물을 입혀준다.

'계란물 입힌 것-안입힌 것-입힌 것' 순으로 쌓아 더욱 빠르고 고르게 작업했다.




7. 마지막으로 빵가루를 입혀주면 치킨 커틀렛 1.5kg 완 to the 성! ㅠㅠ

빵가루에 허브나 천연 가루를 약간 섞어주면 색감이 예쁜 커틀렛을 만들 수 있다.




8. 자 이제 오븐에 구울 차례!

솔을 사용해 양면에 식용유를 고루 발라준다. 충분히 잘 발라줘야 겉면이 바사삭!


12. 140도로 예열한 오븐에 40분 이상 노릇노릇하게 구워준다. (중간에 뒤집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참아야 한닭! 저온에 구워야 훠얼~~씬 더 부드럽닭!!!



 

소스는 버터에 밀가루를 볶아 만든 '루'를 베이스로

우스터 소스, 굴소스, 케찹, 체다 치즈, 편 썬 마늘,

다진 양파와 버섯 등을 넣어 후다다닥 만들었다.

루가 많이 들어가 크리미한 게 특징.


요새 집에 콜라비가 많다. 체다 치즈, 파프리카를 섞고 발사믹 식초를 뿌린 간단한 샐러드.

소스 위에 볶은 양파를 곁들였더니 한층 더 부드러운 식감의 치킨 커틀렛 완성이닭!















몇해 전 서울 사는 친구 따라 처음 맛보았던 딘타이펑의 샤오룽바오. 입에 넣자 마자 뜨거운 육즙이 후두두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 이런 딤섬도 있구나'하는 음식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전에 중국과 홍콩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딤섬이란 그저 한국 만두와 모양만 다를 뿐인 맛있는 중국 만두, 맛있는 중국 찐빵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딘타이펑의 샤오룽바오는 딤섬의 깊이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 지를 확연하게 일깨워 준 음식이었다.

그런 딘타이펑의 본점이 대만에 있다는 건 대만 여행의 중요한 대목이나 다름 없었다.

101빌딩을 구경하고 거기에 있는 딘타이펑을 갈까 하다가 관광객을 포함한 손님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용캉제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손님이 바글바글한 것은 매한가지. 그래도 101빌딩에 비하면 대기시간이 훨씬 짧았다.

대기표를 받고 나서 선주문을 하게 되는데, 한국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메뉴 선택이 수월했다.

나는 샤오마이(새우 얹은 샤오룽바오)와 샤오루젠쟈오(밑면만 살짝 구운 만두), 땅콩소스 비빔면을 각 하나씩 주문했는데,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은 만큼 시스템도 신속하고 체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 잠시 주변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좀 하고 왔더니 이미 내 순서가 지났다고 한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2분 정도 더 기다리니 금세 내 번호가 다시 불렸다.

비좁은 1층 통로와 계단을 오르니 나온 2층 홀.

자스민 차인지 우롱 차인지(기억이 가물가물)와 얇은 생강채 얹은 초간장 소스를 포함한 기본 상차림. 내외부에 모두 한국인 직원이 있어 한국인이 오면 전담 케어를 해 주는 것 같았다.

이윽고 주문했던 새우 딤섬이 나왔다. 선주문 시스템이라 그런지 신속한 서빙! (최고)

메뉴판 설명 그대로 육즙이 살아 있는 샤오마이ㅠㅠ 숟가락을 이용해서 육즙 한 방울 허투루 흘리지 않고 다 먹었다.

간혹 소가 너무 달달해 먹기 힘겨운 딤섬 집이 있는데, 딘타이펑의 딤섬은 별다른 조미료 없이 고기 본연의 담백한 맛과 육즙을 잘 살렸다.

꼭대기에 얹어 올린 통실한 새우 한마리는 입에 넣으면 금방 녹아 없어지는 고기 소와의 작별로 인한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다음으로 나온 땅콩소스 비빔면.

직원이 탁자에 내려 놓기도 전에 벌써 땅콩과 깨의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 와 입맛을 돋운다.

두 말 할 거 없이 맛도 참 고소하고 담백했다. 매운 맛이지만 내 입맛엔 별로 맵지 않았고, 살짝 달달한 맛이 돌고 짜지 않아 서브 메뉴로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당연히 메인은 딤섬 ;)​

마지막으로 나온 군만두 샤오루젠쟈오.

전에 TV에서 이연복 쉐프가 요리한 군만두 모양이 딱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맛보는 건 처음이라 두준두준♥

밑바닥은 반죽을 붓고 얄팍하게 구워 바삭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그외에는 촉촉한 딤섬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샤오루젠쟈오.

초간장을 살짝 찍고 생강채를 올려 같이 먹으니 느끼하지도 않고, 구운 부분이 종잇장처럼 얇게 바스러짐과 동시에 딤섬이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에 고단했던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계산은 다 먹은 후 나갈 때 1층에서 하게 되는 시스템인데, 이렇게 충분히 먹고도 나온 금액은 484 대만 달러... 즉, 우리 돈으로 17,000원 가량!! @@

체계적이고 친절한 손님 응대에서부터 맛과 저렴한 가격까지... 사람들이 왜 딘타이펑~ 딘타이펑~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딘타이펑 본점 위치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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