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한 머리의 이 꼬마들은 눈곱 뗄 세도 없이 밖으로 나와 풀과 나뭇가지 따위를 주워 장난감 삼는다.
쟁이를 찍은 수많은 동영상은 휴대폰 분실로 사라지고 없지만ㅠㅠ 정말 귀여웠던 장면은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두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 사뿐하게 폴짝~ 뛰어 내리고 또 나뭇가지 잡고 올라가서 폴짝~ 또 올라가서 폴짝~ 반복하던 쟁이의 모습.
재밌는 아침 놀이 후 맘마 먹는 쟁이~ 식사는 진지하게 :)
지금쯤 많이 컸을텐데,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겠지? ♥
릴리의 집에서 사파 시내까지 다시 걸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졌다. 그래서 릴리의 남편과 사촌의 쎄 옴(Xe om; 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가기로 했다. 커브 길에 빗길이 미끄러워 좀 무섭긴 했지만 비가 와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굽이 굽이 세네시간을 걷고 또 걸어 온 길, 잘 닦인 도로 위 쎄 옴을 타니 30분도 채 안 걸렸다.
하노이-사파를 운행하는 노선 중 가장 깔끔하고 편한 축에 속하는 사파 익스프레스(Sapa express).
나랑 쫑그리는 사파로 갈 때 한 번, 사파에서 라오스로 국경을 넘어갈 때 또 한 번 이용했는데, 하노이-사파 노선 버스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실히 더 깔끔하고 편했다. 아무래도 더 신경 쓰는 느낌이다.
베트남 현지 버스를 종종 타 본 경험 상, 가끔 시간을 잘 지키지 않거나 승객을 오버해서 받는 바람에 좌석이 모자라는 경우도 있는데, 사파 익스프레스는 비교적 정시에 운행하고, 미리 예약만 잘 하면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사무실 직원, 특히 사파 현지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이 굉장히 친절하고 호의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하노이-사파 노선 버스 사진. 우리네 리무진 버스와 똑같다. (출처 : 사파 익스프레스 홈페이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3년 남짓을 지낸 우리는 2015년 봄, 퇴사와 동시에 꿈에 그리던 동반 배낭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쫑그리가 공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나 홀로 여행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서야 둘이 제대로 된 여행, 그것도 최소 2달간의 긴 배낭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렌 것은 당연했다.
여행의 시작점은 소수민족이 사는 북부 고산지대, 사파(Sapa)로 결정했다. 사실 지난해 4월 흥왕 기념일이었던가? 그때 가려고 기차표니 호텔이니 다 예약했지만 쫑그리 회사에서 좀처럼 쉬게 놔두질 않아서 결국 여행도 못 가고 환불도 못 받았었는데... 그놈의 양심 없는 회사를 관두니 그제서야 갈 수 있었다.
베트남은 길다. 덕분에 베트남 최북단에 위치한 고산지대 사파(Sapa)로 가면 예상 밖의 시원한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겨울에는 열대 지방인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눈이 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눈을 볼 수 있는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지난 2013년에 내린 폭설도 51년 만에 다시 내린 거라고 하니 말이다.
하노이에서 장장 5시간을 달려 도달한 사파. 이동 수단으로는 사파 익스프레스(Sapa express) 버스를 이용했다.
4월, 이미 더울대로 더워진 하노이의 날씨와는 달리 가을 날씨처럼 무척 서늘했던 사파의 날씨 :) 저녁에는 춥기 때문에 긴팔 상의를 꼭 챙겨야 한다.
우리는 사파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했다. 시내를 좀 벗어나니 공사 현장이 나와서 다니기가 수월하진 않았지만, 뿌옇게 안개 낀 사파의 풍경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좋았다.
오토바이가 지나다녀 먼지 나는 길에서는 이렇게 마스크도 써주는 센스.
그렇게 걷다가 카페라기엔 좀 그렇고.. 간이 옥상(?), 시설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공간에서 차와 맥주를 마셨다. 사파가 속한 라오 까이 지방 맥주. 이때까지는 맥주 맛을 모르는 맥알못이었기 때문에 그냥 맥주 맛이 났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카페든 어떠하리. 옥상이든 어떠하리. 계단식 논이 굽이 굽이 이어져 어디서 봐도 좋은 뷰~
잠시 후, 계속해서 산책을 이어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계단 한복판에 노점상이 많았는데, 익숙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견덕후, 견빠를 설레게 하는 견과류!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견과류를 팔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호두가 너무 먹고 싶어 20만동 짜리 호두 한 봉지와 15,000동 짜리 호두까기까지 사버렸다... ㅠㅠ (짐 느는 소리가 들림)
호두를 당장 까먹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호두가 담긴 검은 봉다리를 든 채로 남들 다 사진을 찍는 나름의 핫플레이스(프랑스 식민지였을 당시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추측.) 앞에서 패스트 푸드같은 기념 사진도 한 방 찍고
사파 시내의 정중앙이자 만남의 장소라고 볼 수 있는 공원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호두 까기 시전! 호두 맛은 역시 캬 :)
사파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점심 때였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보니 이미 해가 저물 시간이 다 되어 하루를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트레킹을 가야 하기도 했다. 저녁으로 먹을 베트남식 삼각형 케밥을 2개 '망 베(mang về, =포장, take away)'하고~
숙소로 돌아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바로 뻗어버린 게 문제였는데...
이날이 사실 쫑그리의 생일이었던 것! ㅠㅠ
쫑그리 회사에서 좀 더 늦게 퇴사하라고 붙잡는 걸 내가 생일 전에는 꼭 그만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해서 가까스로 생일에 맞춰 여행을 왔건만... 나의 몹쓸 체력 때문에 하마터면 제대로 축하도 못하고 허무하게 지나갈 뻔 했다.
3시간쯤 깊은 잠에 빠졌을까? 혼수 상태인 나를 조용히 흔들어 깨우더니 아까 사온 조각 케익을 먹자는 쫑그리~ 그 모습이 왠지 짠하고, 너무 미안했다 ㅠㅠ
그렇게 우리 둘만의 조촐한 생일 축하! 사진에서 쫑그리가 두 주먹 불끈 쥔 듯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헤헤 암튼 사랑하는 쫑그리~ 생일 축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