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서울 사는 친구 따라 처음 맛보았던 딘타이펑의 샤오룽바오. 입에 넣자 마자 뜨거운 육즙이 후두두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 이런 딤섬도 있구나'하는 음식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전에 중국과 홍콩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딤섬이란 그저 한국 만두와 모양만 다를 뿐인 맛있는 중국 만두, 맛있는 중국 찐빵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딘타이펑의 샤오룽바오는 딤섬의 깊이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 지를 확연하게 일깨워 준 음식이었다.

그런 딘타이펑의 본점이 대만에 있다는 건 대만 여행의 중요한 대목이나 다름 없었다.

101빌딩을 구경하고 거기에 있는 딘타이펑을 갈까 하다가 관광객을 포함한 손님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용캉제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손님이 바글바글한 것은 매한가지. 그래도 101빌딩에 비하면 대기시간이 훨씬 짧았다.

대기표를 받고 나서 선주문을 하게 되는데, 한국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메뉴 선택이 수월했다.

나는 샤오마이(새우 얹은 샤오룽바오)와 샤오루젠쟈오(밑면만 살짝 구운 만두), 땅콩소스 비빔면을 각 하나씩 주문했는데,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은 만큼 시스템도 신속하고 체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 잠시 주변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좀 하고 왔더니 이미 내 순서가 지났다고 한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2분 정도 더 기다리니 금세 내 번호가 다시 불렸다.

비좁은 1층 통로와 계단을 오르니 나온 2층 홀.

자스민 차인지 우롱 차인지(기억이 가물가물)와 얇은 생강채 얹은 초간장 소스를 포함한 기본 상차림. 내외부에 모두 한국인 직원이 있어 한국인이 오면 전담 케어를 해 주는 것 같았다.

이윽고 주문했던 새우 딤섬이 나왔다. 선주문 시스템이라 그런지 신속한 서빙! (최고)

메뉴판 설명 그대로 육즙이 살아 있는 샤오마이ㅠㅠ 숟가락을 이용해서 육즙 한 방울 허투루 흘리지 않고 다 먹었다.

간혹 소가 너무 달달해 먹기 힘겨운 딤섬 집이 있는데, 딘타이펑의 딤섬은 별다른 조미료 없이 고기 본연의 담백한 맛과 육즙을 잘 살렸다.

꼭대기에 얹어 올린 통실한 새우 한마리는 입에 넣으면 금방 녹아 없어지는 고기 소와의 작별로 인한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다음으로 나온 땅콩소스 비빔면.

직원이 탁자에 내려 놓기도 전에 벌써 땅콩과 깨의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 와 입맛을 돋운다.

두 말 할 거 없이 맛도 참 고소하고 담백했다. 매운 맛이지만 내 입맛엔 별로 맵지 않았고, 살짝 달달한 맛이 돌고 짜지 않아 서브 메뉴로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당연히 메인은 딤섬 ;)​

마지막으로 나온 군만두 샤오루젠쟈오.

전에 TV에서 이연복 쉐프가 요리한 군만두 모양이 딱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맛보는 건 처음이라 두준두준♥

밑바닥은 반죽을 붓고 얄팍하게 구워 바삭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그외에는 촉촉한 딤섬 그대로를 맛볼 수 있는 샤오루젠쟈오.

초간장을 살짝 찍고 생강채를 올려 같이 먹으니 느끼하지도 않고, 구운 부분이 종잇장처럼 얇게 바스러짐과 동시에 딤섬이 입안에서 전체적으로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에 고단했던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계산은 다 먹은 후 나갈 때 1층에서 하게 되는 시스템인데, 이렇게 충분히 먹고도 나온 금액은 484 대만 달러... 즉, 우리 돈으로 17,000원 가량!! @@

체계적이고 친절한 손님 응대에서부터 맛과 저렴한 가격까지... 사람들이 왜 딘타이펑~ 딘타이펑~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딘타이펑 본점 위치 (구글 지도)

대만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친구가 대만에서 꼭 먹어 봐야 할 메뉴로 추천해 준 '우육면'.

한국에도 동명의 라면이 있었기에 일단은 뭔가 친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구글링 결과 용캉 소재 맛집을 알게 되었고, 늘 그렇듯이 맛집 탐방의 기쁨으로 인해 향하는 걸음 걸음이 참 가벼웠다.

Since가 빠지지 않는 간판이며, 낡은 건물 외관이며, 줄 선 사람들까지.. "나 맛집이오" 하는 인상을 풍기고 있던 '용캉우육면'.

약간 이른 점심 시간이기도 했고, 나는 딱 한 자리만 차지하면 됐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났다. 빠른 착석은 나홀로 여행의 큰 이점 중의 하나.

보자... 뭘 시켜볼까? 우육면처럼 보이는 가운데 줄 세 개 메뉴 중에 잠시 고민하다가, 나처럼 혼자 와서 나의 바로 앞 자리에 합석한 대만 언니가 주문한 메뉴를 똑같이 주문했다. 뭐가 뭔지 잘 모를 때 쓰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Beef Noodles with soybean sauce and spicy'로 가장 기본적인 우육면이다.

때깔부터 고기 형태까지 참 니글니글한 우육면의 자태에 멈칫하긴 했지만, 첫 술을 떠보니 생각보다 국물 맛이 깊고 부드러웠다. 기름 맛을 잡기 위해 아주 세게 간을 한 것도 아니었고, 외형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고 무던한 맛이 신기했다. The heavy version of 소고기 무국같기도 했다. 약간 시큼한 냄새도 풍겼다.

고기는 부드러워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개고기 같은 느낌이 들었고, 면은 계란면인건지, 씹으면 탄성 없이 뚝뚝 끊기는 식감으로 '아, 내가 지금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구나'하는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면과  육수가 서로 엄청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척 황홀했다.

대만 언니가 따로 주문한 오이+고추 피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 보고 있자니, 그녀가 대뜸 나에게도 같이 먹자며 넉살 좋게 권한다. 곁들여 먹기에 나쁘지는 않았지만 살짝 기름진 피클이었다. 이보다는 딤섬집에서 주는 짜사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짜사이도 기름지긴 하지만 훨씬 더 새콤달콤 짭쪼롬한 매력을 선사하므로.

작은 테이블에 단둘이 앉은 우리는 우육면을 천천히 먹으며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녀는 외국인과의 대화가 오랜만인지 짧은 영어로 조금 느리게 그렇지만 완벽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커리어 우먼으로 숨 가쁘게 살아오다가 병중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최근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그녀는 이곳의 단골 손님이라고 했다. 오늘도 갑자기 우육면이 생각나서 왔다는데 우리가 이렇게 만날 인연이었나보다 싶었다.

내가 식사 후 단수이로 향한다고 하니 자기도 마침 그 근처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본인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YES 했는데 그녀는 자기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할 거냐며, 무섭지 않냐고 되려 물어 본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대답했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모습은 그렇다 치고, 선한 눈빛과 꾸밈없이 말하는 모습은 속이려야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는 길에 입이 심심하지 않을까 해서 근처 'TenRen's Tea'에서 쩐주나이차(버블밀크티)를 포장해 갔다.

사실 언니가 식당에서 내 몫의 식사비까지 내주었고, 나는 그런 뜻밖의 호의에 너무 고마워 맛있는 디저트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건데 그녀는 배부르다며 사양했다.

단수이까지 가는 30여분의 시간동안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고, 금세 가볍지 않은 정이 들어 버렸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는 없었다. 왜 하필 오늘에야 만났을까 참 아쉬웠지만 생각해 보면 오늘이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그나마도 최근 깔았다 지웠다는 카카오톡 계정을 알려 줬는데,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카카오톡도 사용하지 않나 보다. 연락처를 받아 놓을 걸 하는 아쉬움과 동시에 늘 만나고 헤어짐이 이어지는 여행의 희노애락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대만을 떠나기 하루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만의 참된 매력을 느끼게 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고, 그립고, 앞으로도 가끔 한 번씩 떠올릴 우육면 한 그릇과 함께 그리워할 것이다.

•용캉우육면(Yongkang Beef Noodles) 위치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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