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한 동생이 메시지를 보내 최근에 시작한 신서유기 시즌 4를 강력 추천했다. 야근이 잦고 고된 회사생활 가운데 유일한 낙이라며.

늘어지는 금요일의 밤, 때마침 TV에서 재방송을 틀어 주길래 첫 회를 봤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신서유기의 배경지는 베트남이었다. 동생과 나는 몇해 전 베트남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며 여러 추억을 공유한 사이였다.

▲ 베트남의 청명한 하늘. 알쓸신잡에 나온 김영하 작가의 표현처럼 햇빛이 참 바삭바삭하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너무 습한)


베트남어로 상호명이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 좁고 높은 건물들, 왁자지껄한 공기, 쨍한 날씨. 요즘따라 더 그리운 베트남 풍경..

그중에서도 단연 '분짜(Bun cha)'가 눈에 띄었다. 얇은 쌀국수 면인 분(Bun)과 고기를 다지고 치대서 구운 미트볼 형식의 짜(cha)를 합쳐 분짜라고 하는데, 돼지고기 짜(Cha thit lon)와 함께 삼겹살을 내주거나 신서유기에 나온 곳처럼 고기를 양념해서 그냥 구워내는 식으로도 나온다.

▲ 분짜 사진이 외장하드 구석 어딘가에 짱박혀 도무지 보이지 않기에 대신 가져온 분팃느엉(Bun thit nuong; 구운 고기 쌀국수) 사진. 쿠킹클래스에서 직접 만들고 세팅한 것이다. 분짜도 각자 그릇에 면과 고기와 야채를 대충 이런 느낌으로 담아서 느억맘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사실 나에게 분짜는 애정이 담뿍 담긴 정성 그 자체다. 내가 베트남에서 처음 사귄 친구에게 대접받은 음식도,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제자들에게 대접받은 음식도 모두 분짜였다.

분짜는 그만큼 대중적이면서도 귀한 손님들에게 내놓기에 손색 없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참 간단해보이지만 메인인 짜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짜'는 직화로 굽기 때문에 베트남의 덥고 습한 날씨를 감안하면 정말이지 집에서 만들기 싫은 음식, 주부들이 만들기 꺼려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 지글지글한 뙤약볕에 장우산을 양산처럼 대동하고 돼지고기 짜(Cha thit lon)를 굽느라 바쁜 베트남 학생. 참 고생이 많다ㅠㅠ

 

장시간 작은 화로 앞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알맞게 굽고, 뒤집고, 부채질을 하는 동안 풍겨 오는 숯불 구이의 냄새는 좀 많이 환상적이다. 초대받은 손님이 일찌감치 맛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고, 맛을 보고 나면 집주인에게 감사하게 되는, 삼삼오오 다같이 둘러 앉아 분과 짜와 향신채를 나눠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게 되는 그런 음식이다.

또한 보통 삼겹살 부위를 사용하기에 삼겹살이라면 꿈뻑 죽는 한국인들은 물론, 피쉬 소스가 들어가긴 하지만 과하지 않고 새콤 달콤한 소스 덕에 외국인들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완성된 분짜 상차림.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색채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화려한 꾸밈 방식새우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비싼 새우를 두 대접이나 구워줬다. 아래 오징어 김치전은 뭐라도 해야할 것 같던 나의 작품인데, 다른 접시들과 드레스 코드를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


안그래도 최근에 내맘대로식 분짜를 해먹었다.
여전히 베트남에서 일하는 한국 친구에게 부탁해 공수받은 느억맘(Nuoc mam; 피쉬 소스)으로 예전 쿠킹 클래스에서 배웠던 레시피를 떠올려가며 소스를 만들고, 삼겹살을 팬에 굽고, 분 면을 삶아 곁들여 먹었다. 채소는 아쉬운대로 상추, 파, 부추 정도.

약식 분짜도 맛이 꽤 괜찮았지만 현지의 느낌을 따라가긴 힘들었다.
더위를 이겨 가며 열심히 구운 고기의 맛과 향, 그 냄새와 함께 떠올려지는 현지 친구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들.. 애초에 그 최고의 요리 비결을 능가할 리 만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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