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이 어두웠던 밤이 떠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밝은 아침이 찾아왔다.


늘어진 거미줄도 아트가 되는 이곳.

축축한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고요한 깟깟 마을의 분위기를 한껏 더 살려 준다.


오늘도 여전히 씩씩한 쟁!


작은 체구를 가뿐히 움직이며 어딜 그렇게 가는지~


아하~ 대나무 앞 포토존 ㅋㅋㅋㅋㅋ

차렷 자세로 카메라 앞에 선 진지한 쟁이가 너무 너무 귀엽다.


세상 만사 모든 게 다 신기한 나이.

부스스한 머리의 이 꼬마들은 눈곱 뗄 세도 없이 밖으로 나와 풀과 나뭇가지 따위를 주워 장난감 삼는다.


쟁이를 찍은 수많은 동영상은 휴대폰 분실로 사라지고 없지만ㅠㅠ 정말 귀여웠던 장면은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두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 사뿐하게 폴짝~ 뛰어 내리고 또 나뭇가지 잡고 올라가서 폴짝~ 또 올라가서 폴짝~ 반복하던 쟁이의 모습.



재밌는 아침 놀이 후 맘마 먹는 쟁이~ 식사는 진지하게 :)

지금쯤 많이 컸을텐데,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겠지? ♥


릴리의 집에서 사파 시내까지 다시 걸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졌다.
그래서 릴리의 남편과 사촌의 쎄 옴(Xe om; 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가기로 했다. 커브 길에 빗길이 미끄러워 좀 무섭긴 했지만 비가 와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굽이 굽이 세네시간을 걷고 또 걸어 온 길, 잘 닦인 도로 위 쎄 옴을 타니 30분도 채 안 걸렸다.

무언가 허무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어제 실컷 봤으니 됐다 싶었다.

사파 시내에서부터 깟깟 마을까지 트레킹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니 두세시 경. 릴리의 집에 도착했다.

 

대나무 울타리를 들어서면 보이는 너른 마당, 왼 편에는 최근에 다시 정돈한 듯하지만 결국은 푸세식인 화장실, 오른 편에는 장작 더미들과 수돗가, 정면 끝에는 나무로 된 집이 있었다.

 

마당에 그냥 막 풀어서 키우는 닭과 병아리들..

릴리의 딸인 네 살배기 쟁이가 모이를 주곤 했는데, 스킬 없이 무당처럼 쌀을 팍팍 던지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쫑그리는 조용히 관찰 중~

 

쟁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시크하면서도 은은하게 웃는 표정과 수차례 반복하는 행동들이 쓰러질 듯이 귀여웠다.

이를 테면, 걸레를 수돗물에 적신 후 대충 짜서 빨랫줄에 던지고(키가 안 닿아 ㅠㅠ), 또 그 걸레를 다시 적신 후 널고, 적시고, 널고를 계속 반복ㅋㅋ

나도 같이 놀고 싶어서 걸레를 효율적으로 짜는 법을 알려 줬다ㅋㅋㅋㅋ

 

쟁이와 놀다가 날이 저물기 전에 마을 산책을 하기 위해 나섰다.

땅 파는 쫑이 위로 햇빛이 무척 따사롭다. 자외선이 강한 동남아에서 머리카락과 두피 보호를 위해 모자는 필수!

 

기념품 샵 같은 곳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하드 한 개에 5천 동! (우리 돈으로 약 ₩300)

 

작은 마을이지만 오며 가며 자연 경관을 맘껏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인 릴리.

 

이곳은 릴리 하우스의 중심, 거실 겸 식당이다.

바닥에 놓인 화로에서 바로 요리하는 릴리.

 

집에서 활동하기 불편한 소수민족 의상은 이미 벗어버린 지 오래였다. 고산족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더 진솔해 보였다.

 

짜잔~ 남부러울 것 없는 깟깟마을 가정식 한 상! 물론 매일 이렇게 먹진 않겠지만...

 

찰기가 없이 흩날리는 흰 쌀밥, 찐 양배추와 구운 두부 토마토 볶음, 죽순 볶음과 돼지고기 파프리카 볶음, 채소 국, 약간은 뿔은 듯해도 중독성이 강한 볶음 라면까지 :)

전체적으로 조미료 맛이 돌긴 했지만, 죽순이 특히 아삭 아삭하니 너무 맛있었다.

 

샤워실이 따로 없는 열악한 시설...

그냥 양치질과 세수만 하기로 한다. 쫑그리 치카푸카~

 

 

우리의 잠자리. 이곳에서 우리는 악몽같은 어둠을 경험한다.

 

빛이란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어두 컴컴한 방 안. '칠흑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한 줄기의 빛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일인 줄 미처 알지 못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왠지 모르게 옆집 개가 계속해서 왈왈 짖는데, 잠은 죽어라 안오고 자리는 불편하고... @@

 

개가 왜 저렇게 짖는 걸까? 혹시 마을에 외국인 관광객이 왔다고 도둑이 드는 건 아닐까?

 시건 장치라고는 자물쇠 하나가 전부인 낡은 목조 주택인데...

 

아니면 귀신이 있는 걸까? 아까 집 정문 양쪽에 모두 부적이 붙어 있었는데...

 

걱정에 걱정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불면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사파에 여행을 시작한 우리. 여행 첫날이었던 전날, 시내를 거닐다 검은 몽족(Black H'mong) 여인인 릴리를 만났다.

무척 어려보이는 나이에 제법 영어를 잘 하던 그녀는 우리에게 작은 수첩 하나를 들이 밀었다.

수첩엔 그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여행자들의 긍정적인 후기들이 적혀 있었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일하는 그녀의 말에 다음날 당장 트레킹과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인당 20불이었던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비용 정보부터 가물가물해진다.

다행히 쫑그리가 열심히 기록해 둔 가계부 파일이 있어 확인해 보니 둘이 합쳐 600,000동. 즉, 인당 14불(₩16,000원) 정도 지출되었는데, 숙소에 식사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전혀 큰 지출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릴리가 호스텔 앞으로 픽업을 나왔는데 그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돌을 갓 지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과 중년의 여성, 이렇게 두 명의 몽족 여인이 우리의 트레킹에 합류했다.

사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전날 처음 사파에 도착해서 봤던 풍경이 그러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거나 트레킹 가이드를 하는 고산족 여인들. 그들은 혼자이면서도 동시에 여럿이었다.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호의적인 관광객을 만나면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그쪽으로 모여 본인의 물건도 구매하기를 청한다.

 

우리 역시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찌됐든 그녀들을 따라가며 시작된 사파 깟깟 마을 트레킹.

 

길이 엄청나게 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전 사 둔 커플 트레킹화가 요긴하게 쓰였다.

 

사실 고산족 여인이 셋 씩이나 동행하게 되어 무척 든든했다.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가운데 그녀들의 순수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풀잎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염료가 되는 풀잎을 뜯어다가 손바닥을 퍼렇게 물들여 주기도 했다.

 

릴리 게스트 하우스의 호스트인 릴리. 무척 젊고 생기 넘친다.

 

몽족 전통복을 입고 머리까지 치장한 그녀 역시 욕실화처럼 생긴 베트남 국민 쓰레빠를 신고 있었다는 건 함정~

 

파노라마. 저 어딘가에 판시팡이 있을까? 보이지 않으려나..

 

깟깟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들른 휴게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허름해 보이지만 나름 메뉴판도 있다.

 

자꾸만 뭘 사 달라던 휴게소 아이에게... 휴대용 포토 프린터로 사진을 뽑아 선물해주었다.

이 때부터 시작된 내적 갈등과 고민들. 필요도 없고 가격도 비싼 그들의 물건을 사주는 것이 진짜로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그렇게 3시간 남짓을 걸어 깟깟마을에 도착했다. 다른 글들을 보니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따로 내지 않은 걸 보니 아마 릴리 투어(?)에 입장료까지 포함 되었나 보다.

 

이내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서 나의 고민과 수심은 더 깊어졌다.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몽족 여인들이 우리를 보고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은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오늘 아침 갑자기 합류한 두 명의 몽족 여인들이었다.

트레킹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에게 본인 물건을 사 달라고 정에 호소했다. 함께 트레킹을 하며 정이 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일단 물건을 보여 달라고 했다. 모두 형편 없었다. 나는 사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았지만 쫑그리는 친구가 엽서를 사 달라고 했는데 잘 됐다며 엽서를 산다 했다.

문제의 엽서 세트. 구닥다리인 데다가 무려 10만 동이다.

하노이 호안끼엠 근처에서도 2만 동에 팔던데... 정말 터무니 없는 가격이었다. 

나는 옆에서 가격을 듣고 너무 비싸다고 말했지만, 쫑그리를 말리지는 않고 불편한 마음에 그에게 괜히 짜증만 냈다.

정말 살 거냐고. 난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결국 그는 샀고, 중년 여성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다음은 어린 아이를 업고도 트레킹을 함께 했던 젊은 엄마.

감정으로 호소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부채라도 떠안은 것처럼 마음이 너무 불편했기에 혹시 머리띠 같은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차라리 쓸모 있는 물건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녀가 가져온 머리띠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8만 동에 구매.

▲ 수제 머리띠 사진

 

나중에 제대로 보니 수제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거였다.

정성이 많이 들어 갔을 텐데 결국 엽서보다 싼 가격에 산 거였다... 애기 엄마한테 괜히 미안했다.

 

그렇게 한차례 씨름을 하고 난 뒤,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던 릴리를 대하는 것도 왠지 불편해졌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든 게 그녀는 아니지만,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녀가 괜히 야속했다. 실은 못하는 것일 테지만.

어디로 넘어가는 지 모르게 비운 계란 쌀국수 두 그릇과 콜라 한 캔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밥값을 내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사양했다. 괜히 거리를 두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이 들어 버린 것을 이용해 물건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수법이 치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들의 이런 생계 방식과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우리가 먼저 부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가이드 역할을 하며 수고해 준 그들에게 일종의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은, 아니었으면 했다.

 

우여곡절 끝에 릴리 집으로 가는 길.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기대되는 건 여전했다.

 

 

사실 여행 중 휴대폰을 바닷물에 빠트리기도 하고, 결국 잃어버리는 바람에, 퀄리티 좋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이것도 겨우 건진 사진들...

실물보다 훨씬 못한 모습이기에 무척 아쉽지만, 그리우면 다시 가야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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