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계획도 없이 사파에 여행을 시작한 우리. 여행 첫날이었던 전날, 시내를 거닐다 검은 몽족(Black H'mong) 여인인 릴리를 만났다.

무척 어려보이는 나이에 제법 영어를 잘 하던 그녀는 우리에게 작은 수첩 하나를 들이 밀었다.

수첩엔 그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여행자들의 긍정적인 후기들이 적혀 있었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일하는 그녀의 말에 다음날 당장 트레킹과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인당 20불이었던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비용 정보부터 가물가물해진다.

다행히 쫑그리가 열심히 기록해 둔 가계부 파일이 있어 확인해 보니 둘이 합쳐 600,000동. 즉, 인당 14불(₩16,000원) 정도 지출되었는데, 숙소에 식사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전혀 큰 지출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릴리가 호스텔 앞으로 픽업을 나왔는데 그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돌을 갓 지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과 중년의 여성, 이렇게 두 명의 몽족 여인이 우리의 트레킹에 합류했다.

사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전날 처음 사파에 도착해서 봤던 풍경이 그러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거나 트레킹 가이드를 하는 고산족 여인들. 그들은 혼자이면서도 동시에 여럿이었다.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호의적인 관광객을 만나면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그쪽으로 모여 본인의 물건도 구매하기를 청한다.

 

우리 역시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찌됐든 그녀들을 따라가며 시작된 사파 깟깟 마을 트레킹.

 

길이 엄청나게 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전 사 둔 커플 트레킹화가 요긴하게 쓰였다.

 

사실 고산족 여인이 셋 씩이나 동행하게 되어 무척 든든했다.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언덕을 오르고 내리는 가운데 그녀들의 순수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풀잎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염료가 되는 풀잎을 뜯어다가 손바닥을 퍼렇게 물들여 주기도 했다.

 

릴리 게스트 하우스의 호스트인 릴리. 무척 젊고 생기 넘친다.

 

몽족 전통복을 입고 머리까지 치장한 그녀 역시 욕실화처럼 생긴 베트남 국민 쓰레빠를 신고 있었다는 건 함정~

 

파노라마. 저 어딘가에 판시팡이 있을까? 보이지 않으려나..

 

깟깟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들른 휴게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허름해 보이지만 나름 메뉴판도 있다.

 

자꾸만 뭘 사 달라던 휴게소 아이에게... 휴대용 포토 프린터로 사진을 뽑아 선물해주었다.

이 때부터 시작된 내적 갈등과 고민들. 필요도 없고 가격도 비싼 그들의 물건을 사주는 것이 진짜로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그렇게 3시간 남짓을 걸어 깟깟마을에 도착했다. 다른 글들을 보니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따로 내지 않은 걸 보니 아마 릴리 투어(?)에 입장료까지 포함 되었나 보다.

 

이내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서 나의 고민과 수심은 더 깊어졌다.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몽족 여인들이 우리를 보고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은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오늘 아침 갑자기 합류한 두 명의 몽족 여인들이었다.

트레킹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에게 본인 물건을 사 달라고 정에 호소했다. 함께 트레킹을 하며 정이 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일단 물건을 보여 달라고 했다. 모두 형편 없었다. 나는 사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았지만 쫑그리는 친구가 엽서를 사 달라고 했는데 잘 됐다며 엽서를 산다 했다.

문제의 엽서 세트. 구닥다리인 데다가 무려 10만 동이다.

하노이 호안끼엠 근처에서도 2만 동에 팔던데... 정말 터무니 없는 가격이었다. 

나는 옆에서 가격을 듣고 너무 비싸다고 말했지만, 쫑그리를 말리지는 않고 불편한 마음에 그에게 괜히 짜증만 냈다.

정말 살 거냐고. 난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결국 그는 샀고, 중년 여성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다음은 어린 아이를 업고도 트레킹을 함께 했던 젊은 엄마.

감정으로 호소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부채라도 떠안은 것처럼 마음이 너무 불편했기에 혹시 머리띠 같은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차라리 쓸모 있는 물건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그녀가 가져온 머리띠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8만 동에 구매.

▲ 수제 머리띠 사진

 

나중에 제대로 보니 수제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거였다.

정성이 많이 들어 갔을 텐데 결국 엽서보다 싼 가격에 산 거였다... 애기 엄마한테 괜히 미안했다.

 

그렇게 한차례 씨름을 하고 난 뒤,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던 릴리를 대하는 것도 왠지 불편해졌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든 게 그녀는 아니지만,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녀가 괜히 야속했다. 실은 못하는 것일 테지만.

어디로 넘어가는 지 모르게 비운 계란 쌀국수 두 그릇과 콜라 한 캔의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밥값을 내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사양했다. 괜히 거리를 두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이 들어 버린 것을 이용해 물건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수법이 치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들의 이런 생계 방식과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우리가 먼저 부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가이드 역할을 하며 수고해 준 그들에게 일종의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은, 아니었으면 했다.

 

우여곡절 끝에 릴리 집으로 가는 길.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기대되는 건 여전했다.

 

 

사실 여행 중 휴대폰을 바닷물에 빠트리기도 하고, 결국 잃어버리는 바람에, 퀄리티 좋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이것도 겨우 건진 사진들...

실물보다 훨씬 못한 모습이기에 무척 아쉽지만, 그리우면 다시 가야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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